“이 회사는 진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분명히 사용자가 불편해하는데 회사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계속 쌓이는데 해결보다 새 기능과 다음 일정이 먼저입니다. 아무래도 이 회사는 사용자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답답한 마음은 자연스럽게 다른 회사를 바라봅니다.
“다른 회사는 다르겠지. 다른 회사는 사용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겠지.”
그래서 이직을 준비합니다. 면접에서 들은 사용자 중심의 문화라는 말에 ‘이곳은 다르다’고 확신하여 입사를 결정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곳 또한 기존에 있던 곳과 같이 또 다른 우선순위가 있고, 또 다른 이유로 사용자의 문제가 뒤로 밀립니다. 다시 한번 실망합니다. 왜 이런 일은 반복될까요?
회사와 디자이너는 같은 문제를 보고 있지 않다
디자이너에게 문제는 대개 사용자의 불편에서 시작된다. 이해하기 어려운 흐름, 불친절한 정책, 반복되는 오류, 맥락 없이 추가되는 기능. 우리는 그것을 발견하고 더 나은 경험으로 바꾸는 일을 한다. 하지만 회사는 사용자 경험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회사는 매출을 만들어야 하고, 운영 가능한 구조를 유지해야 하며,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핵심 고객을 지켜야 하고, 계약·보안·규제·기술 부채 같은 보이지 않는 제약도 감당해야 한다. 사용자에게 더 좋은 선택이 언제나 회사에게도 좋은 선택인 것은 아니다.
더 쉬운 가입 과정은 악용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 더 많은 혜택은 수익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 더 친절한 예외 처리는 운영 조직의 부담을 키울 수 있다. 모든 사용자를 만족시키려는 기능은 핵심 고객에게 필요한 제품의 집중도를 흐릴 수 있다. 회사가 사용자의 불편을 모르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알고도 다른 것을 우선하는 것일 수 있다.
‘해결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두 종류가 있다
여기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는 의도된 트레이드오프다.
회사는 제한된 자원 안에서 무엇을 먼저 해결할지 선택한다. 지금의 불편을 감수하고 핵심 시장 진입, 수익 구조 검증, 운영 안정화, 특정 고객군 확보를 우선할 수 있다. 제품이 완벽하지 않은 이유가 무능이 아니라 전략의 순서일 수 있다.
둘째는 결정 회피다.
문제를 명확히 정의하지 못하고, 책임자가 없고, 누구도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는 상태다. 당장의 불편을 임시방편으로 덮고 다음 분기로 넘긴다. 이때 회사는 전략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둘은 겉으로 비슷해 보인다. 둘 다 사용자의 문제를 당장 해결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디자이너는 이 둘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선택은 무엇을 얻기 위한 것인가?
회사는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가?
언제 이 결정을 다시 검토하는가?
어떤 지표가 바뀌면 사용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지금의 불편은 불편하지만 이해 가능한 전략일 수 있다. 답이 없다면 그것은 전략이 아니라 회피에 가깝다.
디자인 화면 밖에도 제품은 존재한다
디자이너는 화면에서 사용자의 문제를 가장 가까이 본다. 그래서 때로는 화면 밖의 맥락을 놓치기도 한다.
제품의 불편은 디자인만의 결과가 아니다. 가격 정책, 영업의 약속, 고객지원의 역량, 공급 구조, 데이터의 한계, 기술 부채, 조직의 의사결정 방식이 한 화면에 쌓여 나타난 결과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결과만 보고 “회사가 문제를 모른다”고 판단하기 쉽다.
물론 모든 회사가 현명하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 경험을 핑계 없이 방치하는 회사도 있고, 비전과 전략을 말할 뿐 실제 우선순위에 반영하지 않는 회사도 있다.
하지만 모든 불편을 무능이나 무관심으로 해석하는 순간, 우리는 회사를 더 깊이 이해할 기회를 잃는다. 그리고 다음 회사에서도 같은 장면을 만났을 때, 다시 같은 방식으로 실망하게 된다.
이직은 해결책이 아니라 선택이다
그래서 이직은 “이 회사는 틀렸으니 다른 회사로 가겠다”는 탈출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어떤 비즈니스에 공감하는가?
어떤 고객을 위한 제품을 만들고 싶은가?
사용자 가치와 사업 가치가 충돌할 때, 나는 어떤 선택을 납득할 수 있는가?
이 조직에서 디자인은 문제를 발견하는 역할에 머무르는가, 아니면 우선순위와 전략을 함께 설계하는 역할인가?
좋은 이직은 회사 이름을 바꾸는 일이 아니다.
내가 어떤 문제 가까이에 서 있을지, 어떤 의사결정에 참여할지, 어떤 비즈니스 안에서 디자인할지를 다시 선택하는 일이다.
바꿔야 하는 것은 회사만이 아니다
회사를 옮기는 것은 필요할 수 있다.
전략 없는 방치가 반복되고, 사용자 문제를 말할 통로도 없고, 배우거나 영향력을 만들 가능성도 없다면 떠나는 선택은 충분히 건강하다.
다만 이직만으로 같은 문제가 저절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음 회사에서도 사용자의 문제와 비즈니스의 현실은 충돌할 것이다.
다음 회사에서도 모든 불편이 즉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무작정 회사를 옮기기보다, 먼저 자신의 자리를 바꿔야 한다.
사용자의 불편을 발견하는 사람에서, 그 불편이 비즈니스 안에서 어떤 비용과 기회를 만드는지 함께 읽는 사람으로.
좋은 경험을 주장하는 사람에서, 사용자 가치와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설계하는 사람으로.
이직은 회피가 아니라 선택이어야 한다.
다른 회사로 가기 전에, 먼저 내가 어떤 비즈니스에서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 사람인지 정해야 한다.
그래야 회사만 바꾸는 이직이 아니라, 나의 자리를 바꾸는 이직을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