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사는 진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분명히 사용자가 불편해하는데 회사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계속 쌓이는데 해결보다 새 기능과 다음 일정이 먼저입니다. 아무래도 이 회사는 사용자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답답한 마음은 자연스럽게 다른 회사를 바라봅니다.

“다른 회사는 다르겠지. 다른 회사는 사용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겠지.”

그래서 이직을 준비합니다. 면접에서 들은 사용자 중심의 문화라는 말에 ‘이곳은 다르다’고 확신하여 입사를 결정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곳 또한 기존에 있던 곳과 같이 또 다른 우선순위가 있고, 또 다른 이유로 사용자의 문제가 뒤로 밀립니다. 다시 한번 실망합니다. 왜 이런 일은 반복될까요?

01. 회사와 디자이너는 같은 문제를 보고 있지 않아서 그렇다.

디자이너에게 문제는 대개 사용자의 불편에서 시작됩니다. 사용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흐름, 불친절한 안내 사항, 그들을 곤란에 빠트리는 정책, 반복되는 오류, 맥락 없이 추가되는 기능 등등… 사용자는 이 모든 문제를 사용자 편에 서서 이해하고 해결하는 일을 합니다.

하지만 회사는 무작정 사용자 편에 설수가 없습니다. 매출을 만들어야 하고, 운영 가능한 구조를 유지해야 하며,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핵심 고객을 지켜야 하고, 계약·보안·규제·기술 부채 같은 보이지 않는 제약과도 싸워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에게 더 좋은 선택이 회사에게도 좋은 선택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예예를 들어 사용자에게 더 쉬운 가입 과정은 악용 가능성을 키울 수 있습니다. 사용자에게 주는 더 많은 혜택은 회사의 수익성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사용자에게 더 친절한 예외 처리는 운영 조직의 부담을 키울 수 있습니다. 모든 사용자를 만족시키려는 기능은 핵심 고객을 잃게 만들 수 있습니다.

회사가 사용자의 불편을 모르는 것이 아닌 알고도 다른 것을 우선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결하지 않는다’의 상황을 좀 더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회사가 사용자 문제를 그냥 두는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 의도된 방치입니다.

회사는 늘 제한된 자원 안에서 무엇을 먼저 해결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지금의 불편을 감수하고 핵심 시장 진입, 수익 구조 검증, 운영 안정화, 특정 고객군 확보를 우선할 수 있습니다. 제품이 완벽하지 않은 이유가 무능이 아니라 전략의 순서일 수 있습니다.

둘째, 어쩔 수 없는 회피입니다.

문제를 명확히 정의하지 못하고, 책임자가 없고, 누구도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는 상태인 경우가 있습니다. 당장의 불편을 임시방편으로 덮고 다음 분기로 넘길 수 있습니다. 임시방편이 쌓이고 쌓이면 기술 부채가 되는 것을 알면서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에 그 결정을 해야할때도 있습니다. 이때 회사는 전략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입니다.

능력 있는 디자이너는 이 둘을 구분함으로써 회사와 같은 문제를 바라봅니다.

둘은 겉으로 비슷해 보입니다. 둘 다 사용자의 문제를 당장 해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능력 있는 디자이너들은 이 둘을 구분합니다. 그리고 그에 맞게 행동합니다. ‘내 기준’이 아닌 아래와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지금의 불편은 불편하지만 이해 가능한 전략일 수 있습니다. 답을 낼 수 없다면 그것은 전략이 아니라 회피라고 봐도 됩니다. 그럴땐…. 그냥 같이 회피합시다. 나 혼자 회사를 구할 수 없습니다.

02. 제품은 ….

디자이너는 화면에서 사용자의 문제를 가장 가까이 봅니다. 그래서 때로는 화면 밖의 맥락을 놓치기도 합니다.

제품의 불편은 디자인만의 결과가 아닙니다. 가격 정책, 영업의 약속, 고객지원의 역량, 공급 구조, 데이터의 한계, 기술 부채, 조직의 의사결정 방식이 한 화면에 쌓여 나타난 결과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결과만 보고 “회사가 문제를 모른다”고 판단하기 쉽습니다.

물론 모든 회사가 현명하게 행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용자 경험을 핑계 없이 방치하는 회사도 있고, 비전과 전략을 말할 뿐 실제 우선순위에 반영하지 않는 회사도 있습니다. 첫 번째 회사도 세상에 많고, 두 번째 회사도 세상에 많습니다. 그렇다고 사용자 경험을 핑계 없이 방치하는 회사를 무작정 욕할 수는 없습니다. 사용자 불편을 그냥 두는 것을 회사의 무능이나 무관심으로 해석하는 순간, 우리는 비즈니스를 더 깊이 이해할 기회를 잃습니다. 그리고 다음 회사에서도 같은 장면을 만났을 때, 다시 같은 방식으로 실망하게 됩니다. 그 손해는 결국 내 성장의 저하로 이어집니다. 나만 손해라는거죠.

03. 그렇기에 이직은 탈출이 아니라 선택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직은 “이 회사는 틀렸으니 다른 회사로 가야겠다. 거긴 옳은 방법으로 일할꺼야.” 라는 식의 탈출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 스스로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 때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는 조직’에 갈 수 있습니다.

  • 나는 어떤 비즈니스에 공감하는가?
  • 어떤 고객을 위한 제품을 만들고 싶은가?
  • 사용자 가치와 사업 가치가 충돌할 때, 나는 어떤 선택을 납득할 수 있는가?
  • 이 조직에서 디자인은 문제를 발견하는 역할에 머무르는가, 아니면 우선순위와 전략을 함께 설계하는 역할인가?

성공적인 이직은 회사 이름을 바꾸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문제 가까이에 서 있을지, 어떤 의사결정에 참여할지, 어떤 비즈니스 안에서 디자인할지를 다시 선택하는 일입니다.

04. 바꿔야 하는 것은 회사만이 아닙니다.

회사를 옮기는 것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전략 없는 방치가 반복되고, 사용자 문제를 말할 통로도 없고, 배우거나 영향력을 만들 가능성도 없다면 떠나는 선택은 충분히 건강한 선택입니다.

다만 이직만으로 같은 문제가 저절로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다음 회사에서도 사용자의 문제와 비즈니스의 현실은 충돌할 것입니다. 다음 회사에서도 모든 불편이 즉시 해결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즈니스의 본질은 어딜 가든 똑같이 때문입니다.

그러니 무작정 회사를 옮기기보다, 먼저 자신의 자리를 바꿔야 합니다. 사용자의 불편을 발견하는 사람에서, 그 불편이 비즈니스 안에서 어떤 비용과 기회를 만드는지 함께 읽는 사람으로요. 좋은 경험을 주장하는 사람에서, 사용자 가치와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설계하는 사람으로요.

이직은 회피가 아니라 선택이어야 합니다. 다른 회사로 가기 전에, 먼저 내가 어떤 비즈니스에서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 사람인지 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회사만 바꾸는 이직이 아니라, 나의 자리를 바꾸는 이직을 할 수 있습니다.